나만의 썰

슬기로운 사회생활 (feat. 2년간의 법정투쟁기)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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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24.08.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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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최종회

 

이전에도 이야기했듯 우리나라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는 비율은 1프로 미만이야. 비록 재판을 통해 상대남녀의 진술 대부분이 허위에 가깝다는 건 나의 반론과 그 진술 내용 스스로의 논리적 모순을 통해 어느정도 드러났지만 과연 내가 무죄를 선고받아야 할만큼 그 날의 행적에 있어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니라고 봅니다.

 

비록 주먹질은 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서로 밀고 당기는 몸싸움도 있었고, 특히 덤벼드는 그 남자새끼를 넘어뜨려 깔고 앉은 것도 사실이니까.

 

그 정도 폭력행위는 만약 일반폭력으로 기소가 되었으며 벌금 100-200만원이면 끝날 일이지만 문제는 벌금형 없이 오직 3년 이상의 실형선고만이 가능한 폭처법으로 기소가 되었고 내가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여서 문제가 심각했던거지.

 

62(집행유예의 요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그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다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그 집행을 종료하거나 면제된 후 3년까지의 기간에 범한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형법 2005.7.29.>

 

그래서 선고일이 다가올수록 내가 완전히 무죄를 받는 건 현실적으로 좀 어려울거란 생각이 들어서 나는 하나씩 주변정리를 시작했어. 예전에 갑작스럽게 잡혀가본 경험 때문에 어떤 걸 정리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었거든.

 

출소할 때 집에서 선물로 사준 승용차는 출소 후 잠시 다녔던 그 석재회사의 친한 동료에게 맡겼어. (대신 매월 렌트료 개념으로 소정의 영치금을 넣어주기로하고)

당시 알바로 다녔던 신용카드택배사에 사직서도 냈고, 집안의 물건은 싹 정리해서 시골 부모님 댁으로 보냈지. 그리고 남자가 먼 길 떠날 때는 항상 컴터 하드디스크 정리를 잘 해야돼. 쪽팔리기 싫으면.

 

그리고 예전 의정부영어교육생 동기들이 서울 강남에서 내 송별회를 준비했더라고. 8명 정도 모였는데 텐프론지 쩜오인지는 몰겠지만 암튼 아이돌같은 애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잘 놀았어.

 

이렇게 징역복귀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선고당일 법정으로 들어섰지.

 

선고일 법정 분위기는 이래.

선고 받으러온 피고인들과 가족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우고 있어. 그리곤 우선 이미 구치소에 수감중인 구속재판자들이 교도관들의 호송을 받으며 법정 사이드 쪽문으로 들어와서 선고를 받기 시작해. (대부분 실형이야...그렇게 실형이 예상되니 이미 구속도 된거고), 간혹 그중엔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경우도 있어서 그럴때면 방청석의 가족들에서 환호성이 터지지. 그리곤 방청석에 앉아있던 불구속 재판자들이 하나씩 나와서 재판을 받는 데 벌금형이 대부분이야. 하지만 그 중엔 실형선고를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법정구속되고 법정 사이드 쪽문으로 교도관에게 끌려가. 이럴땐 방청석의 가족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나지.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어.

통상 선고할 때.... 판사는 우선 판결문을 대략적으로 읽어.

우선 공소사실을 말하고, 그리고 그 공소내용에 대한 법리적판단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으로 양형에 있어 참작할 만한 사정을 이야기하고,,,,마지막으로 주문하겠습니다하고 최종선고결과를 이야기해.

 

근데 윤판사가 판결문을 읽기 전에 정말 이례적으로 이 재판과 관련한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기 시작하더라고.

 

솔직히 이 재판 처음 접했을 땐, 나는 가석방중인 피고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우선 가석방취소 처분을 피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비로소 피고인에게도 분명 소명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와 그 섣부른 나의 예단에 대해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성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군.

내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어디까지 접근했는지는 내 자신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피고인에게 일말의 억울한 부분이 없고자 나름 최선을 다했다.

 

판사가 일개 경미한 사건의 피고인에게 이렇듯 장황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경우는 없어. 그만큼 이 윤판사도 이번 재판을 통해 느끼는 게 많았던 거지. 문제는...이렇게 나를 슬슬 달래는 분위기가.......뒤에 나올 선고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기 시작했다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판결이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항소심에서 다퉈달라.....

(결국 무죄는 아니라는 말이고 폭처법 유죄면,,,실형은 기정사실화 되는 거지...다시 감빵생활을 슬기롭게 시작해야 하는 군,,,,,)

 

그런데 마지막 반전이 일어났어.

 

윤판사가 공소내용 중 일부 피해자 주장은 그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공소내용 중 그러한 주장을 배제하고 남은 나머지 폭력행위만을 봤을 때는 폭처법 적용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재판부는 직권으로 피고에게 적용된 죄목을 폭처법이 아닌 특수폭력으로

 공소변경 한다.

 

윤판사가 노린 핵심은......특수폭력은 벌금형 선고가 가능한 죄목이거든.

 

그리고 윤판사가 말했어. “주문하겠습니다.”


                                       주문 : 피고 000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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