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사회생활 (feat. 2년간의 법정투쟁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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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장기수 이야기 ③ -김변호사의 눈물.
제일 먼저 인정심문(재판진행에 앞서 재판부가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피고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이 끝나고 검찰이 공소사실을 낭독했어. 공소사실만 들으면 나는 살인전과자 새끼가 직업도 없이 무위도식하면서 이웃집이 시끄럽다고 쳐들어가서 죽이겠다고 난동까지부린 놈이야.
공소사실 낭독이 끝나고 그 담당판사(이하 윤판사)가 우리보고 묻더라고. 공소사실 인정하냐고. 그래서 우리는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한다고 했어.
그러니까...그 윤판사가 불쑥 이런 말을 던지더라고.
아니 그럼....왜 피해자와 합의를 했죠? (뭔가 잘못한게 있으니 피해자와 합의한 거 아니냐는 뉘앙스)
머여...유능한 판사라드만 관련 서류 다 못본겨? 싶더라고.
그래서 그랬지. 그 합의 내용이 판사님이 생각하듯 뭔가 내가 잘못한게 있어서 상대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주고 받아낸 일방적인 합의서가 아니다.
가석방자라는 내 자신의 특수한 지위 때문에 실제로는 내가 합의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상대가 자꾸 허위사실로 나를 가해자로 몰고해서 걍 서로 문제 삼지않을려고 상호합의를 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일로해서 양측에서 금전이 오간것도 없었다.,,,관련서류 좀 보시라고 했어.
이건....아주 나중의 일이지만 그 도도한 윤판사가 나 1심 재판말미에 모든 방청객이 보는데서 내 사건과 관련해서 자기 고백을 한 적이 있어. 솔직히 이 재판 처음 시작할 때 나는 피고가 자신의 가석방기간을 넘길 목적으로 본 사건을 부인사건(피고가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사건. 이렇게되면 재판절차가 늘어짐)으로 몰고간다고 예단했다. 미안하다.....한 마디로 그 똑똑한 윤판사마저 나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서 관련서류들을 대충 봤다는 거지. 그 정도로 편견이란게 무서운거야.
여튼...그렇게 날 유죄로 예단한 판사이다보니 그 날 다음 공판기일을 잡고 제출한 서류의 증거능력 판단이나 증인채택 등 일련의 공판절차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아주 우리 김변호사의 의견을 철저히 개무시하더라고. 김변호사 표정이 거의 울상이더라고. 자기도 경험이 일천한데다 상대가 윤판사다보니 그 카리스마에 눌려서 별다른 말도 못하고 쩔쩔맸어.
그리곤 다음 공판 기일을 잡고 법원을 나섰는데....길거리에서 우리 김변호사 나 붙잡고 엉엉 울더라고...머 여러 가지 감정이 복받혔나보지. 그려...이게 다 니가 성장하는 과정이다.
내가 달랬지. 이제 공판 시작이다. 너무 좌절하지 마라. 게임 끝난거 아니니 다음 공판준비 제대로 하자.
그리곤 거의 삼일에 한 번 정도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랑 김변, 그리고 다른 병아리변호사 셋이 모여서 변론 준비를 했어 자장면 시켜먹어 가면서....
그 다음 공판 증인으로 채택된 건 소위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는 그 년놈들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