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사회생활 (feat. 2년간의 법정투쟁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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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기수 이야기 ⓵
그 무렵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어느 페미뇬이랑 동거를 시작했어. (내가 왜 뇬이라고 부르는지 나중에 알게 됨) 어느 커뮤니티 게시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는데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직업이 청소년 상담사인 동시에 서울 모여대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여자였어. 당시 나이 딱 서른.
게시판 아이디가 “타나토스”였는데 아이디를 보자마자 심리학 전공인걸 알았지. 타나토스라는 말이 “소멸충동”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거든. 그래서 심리학 전공하세요?부터 시작한 대화가 계속 이어지면서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됐지. 그 사이에 나의 특수한 처지도 알게됐고. 그래서 더 호기심을 가지더라고. 나한테.
그러다 어느날 이 여자가 대구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 만나서 밥이나 먹게 된거지. 대구 서부정류장에 도착한다길래 마중을 나갔어. 그리곤 처음 얼굴을 마주했는데. 키가 좀 작은 편이고 약간 통통한 여자였어.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야.
근데 상대여자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지 눈빛이나 행동을 보면 알잖아. 솔직히 지가 예상했던거 보단 훨씬 괜찮다고 생각하는 눈치더라고. 계속 실실 웃더군.
그리곤 내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갑자기 이뇬이 운전하고 있는 내 볼때기에다 기습뽀뽀를 하는거야. 머...대충 니 마음은 알겠고.
그래서 그날 어쩌다 어쩌다 술먹고 내 아파트에 까지 오게 됐어. (그 사이 나는 그 원룸에서 나와서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했어) 머...그 다음은 짐작하는 그대로.
그리곤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어. 솔직히 그 시절에 그 뇬 한번씩 나 만나면 내 얼굴도 똑바로 못쳐다봤어. 부끄럽다고.
사랑도 일종의 “권력관계”야. 둘 중 누가 권력자? 덜 좋아하는 쪽이 권력자.
따라서 우리 둘 사이에선 내가 갑이었어.
근데 나중에 알고봤더니 이 뇬이 유부녀였어. 두 살짜리 딸하나를 둔.
그러면서 지금의 남편이랑은 성격이 안맞아서 이혼과정에 있다...그러면서 곧 이혼절차가 마무리될거라고 하더라고. 그리곤 자기가 왜 이혼까지 결심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 뇬 이야기만 들으면 지 남편은 엄청나게 무능하고 지 시댁은 며느리 못잡아 먹어서 안달난 완전 막장드라마 시댁이더라고.
결국 그 뇬. 지 딸을 데리고 대구로 내려와서 내 아파트로 들어온거야. 졸지에 두 살 짜리 딸을 둔 아빠가 됐지.
그리고 나는 그 즈음 다니던 석재회사에 사직서를 냈어. 재판준비도 해야하고 본격적으로 공판이 시작되면 법원에도 왔다갔다 해야하는데 도저히 정규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순 없더라고. 그래서 벌이는 좀 적더라도 업무시간의 제약이 없는, 한마디로 내키는 날 내키는 시간대에만 일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는데. 딱 좋은게 있더라고. 신용카드 배송업무. 정식 업무시간이 있는게 아니고 회사에서 내 구역에 돌려야 할 카드 모아서 주면 한 이 삼일 안에만 배송하면 되는 거라서 그 이삼일 안에 아무 때고 시간될 때 몰아서 배송하면 끝이야.
김변호사가 나보고 혹시 그 날 그 사건을 눈으로 본 사람은 없지만 이런 저런 소리를 들었던 주변 사람은 많을 거 아니냐. 혹시 그 중에 누구라도 진술서 한 장 써 줄 수 있는 사람 찾아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예전에 살던 그 원룸으로 찾아갔어. 벌써 사건이 난 지 반년 정도가 흘렀고 그 사이 그 년놈이랑 나도 전부 이사를 나왔어.
음료수 사들고 그 원룸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렀어. 대부분 그 날일을 기억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잘못은 그 커플이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진술서 한 장 써줄 수 있냐고 하면 다들 난색을 표하더라고. 머리 아프게 재판에 엮이기 싫은거지.
거의 모든 집에서 거절당하고 그냥 돌아갈려다가 마지막으로 한 집만 더 눌러보자 싶어서 초인종을 눌렀어. 그 집은 그 년놈들이 살던 호실 바로 위층이야.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얼굴을 빼꼼이 내보이는데...진짜 보기 드문 미인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