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작] 내가 암에 걸린 이유 (빨간 딱지와 손님, 연인, 그리고 배신) -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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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회차가 읽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감사하게도 의미는 없지만 둘다 베스트 갔네요.
솔직히 처음엔 블선 좀 타볼까 했는데.. 큰 욕심 없으니 추천 굳이 안눌러주셔도 됩니다(반어법 아님 진심).
연재에 따른 기본 선상 받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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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가난한 집안환경에서 자라와서 그런지 몰라도, 늘상 화이트칼라보다 블루칼라가 꾸준한 돈벌이엔 이상적인 경우라 생각했다. 정말 아무도 모르고 아무 것도 없는 오지의 환경 속에서 피지컬한 능력이라던지, 손기술이라던지, 어딜 가도 범용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잡기라던지.. 이런거야 다 돈벌어먹는데 도움이 되지만 단순히 지식의 양과 폭으로 뭔 돈을 벌겠나? 그것도 빨간 딱지가 있는 마당에.
20대 청춘에서 이미 남들과 다른 출발선상에 놓여져버린 나는 진짜 당시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징역 선고 받으러 갈때 재판장에서 '피고인 아만다에게 징역 XX을 선고한다.' 다음 [왜 그 말이 안나와] 심정만큼 불안했다.
(설명: 보통 집행유예를 받으면 징역 XX을 선고한다. 단, ~~어쩌구 자시구 하니 형의 집행을 XX월 유예한다. 라고 한다. 나는 뒷말이 없어 걍 징역형 받음. 사실 저때 존나 긴장되고 두렵고 떨리고 무섭다 아직도 인생 역대급 공포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알아둬봤자 쓸데없는 지식이지만.. 티비 등에서 나오는 법정에서 망치 두들기는거, 그거 민사재판에서만 하는거다. 형사재판장엔 망치 두들기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나오는거 다 픽션이라 보면 됨.)
아래 내용은 나의 주요 썰과 무관한 부분이니 너무 길어 귀찮은 분들은 건너띄시길. 이탤릭체로 변경해 두었음.
출소썰은 풀만 하다. 어처피 3편이 출소 뒤 삶을 요약한 내용이니. 출소도 참 기가막히게 했는데, 내가 역대급 가석방 받았다고 했다. 50%를 좀 넘는 비율이니 (짤막 지식: 형법상 형기의 30%정도만 살아도 가석방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나 사실상 가석방 대다수는 10%정도밖에 못받는다.) 그것도 놀라운데, 가석방 받는 과정(?) 그게 좀 신기했다.
여느덧 다르지 않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당시 모든 훈련생들이 자격증 무사통과하고 각자 자기가 원래 소속되어 있던 교도소로 이감가길 기다리며 시간을 깨고 있었다. 한두달 대기하다 다 이제 뿔뿔이 다시 흩어질 상황이었고, 아마 그날 흔치 않은 불법적 온수샤워 (짤막 지식: 교도소 내에선 온수샤워가 원칙적으로 안에서 제공하는건 일주일에 한 번, 약 20분 가량이다. 사동마다 몇 개 방 사람들이 한번에 4-50명쯤 가서 20분정도 온수 틀어준다)를 했는데, 교도관이 눈감아주는 댓가로 우리가 불을 지피고 그 불에다가.. 뭐 이상한 존나 큰 냄비 양동이를 만들어서 거기 물을 넣고 끓인다음 펄펄 끓인 물을 냉수와 섞어 그걸로 샤워하는 과정이다. 근데 그날 좀 행동지능(?) 이 좀 부족한 형이 팔팔 끓는 물을 냉수에 섞지 않고 그냥 깨벗은 알몸에 디립다 붓는 바람에.. 존나 역대급 소동이 난 하루였었다. 아, 그리고 그 전날... 내딴에는 존나 긴 수형생활 중 처음으로 가족에게 손편지를 받아서 존나 펑펑 울었던 날이기도 했다.
갑자기 주임실에서 XXX번 XXX번 사무실로 하길래 들어갔다(짤막 지식: 교도소 안에선 사람 이름 안부르고 수형번호 부른다는건 다 알테지..?). 들어가니 전화 한 통을 받으랜다(?). 받으니.. 누군가가
"아만다씨 너무 긴장 하지 말고 들으세요. 아만다씨는 내일 출소 합니다. 00시에 출소 하니, 굳이 사동이나 같이 생활하는 사람에게 말 하지 말고 조용히 준비하세요." 라고 말을 건네고 끊었다. 이게 뭔일이람. 그때 내가 형기가 한 1년하고도 조금 더 남은 상황이었다. 말이 되나?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날 저녁 존나 입꼬리가 귀 근처에 걸리고 집에 가자마자 AV ㅇㄷ 뭐볼지 정리해둔 수형생활 그 초록노트 리스트를 다시금 보며 가자마자 일단 ㅇㄷ보고 나가자마자 담배한대 빨고 아 뭐부터 해야하지 존나 신이 났다. 근데 방사람들 중 한 명이 "아만다 너 뭔일 있냐? 아까 주임실에서 부르는거 같던데?" 라길래..
"아 형님 저 뭐 원래 있던 동부에서 생활한 기록 뭐 조회하고 맞냐고 물어봤습니다 형님.." 하고 일단 얼버무렸다.
ㅈㄴ 긴장되는 순간... 그 여느때보다 1분 1초가 지나질 않는다. 진짜 저녁 11시부터 11시 59분 59초까지의 총 3600초동안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이 딸깍 딸깍 하는 것을 하나하나 다 셌다. 와 근데 너무 칼같다. 59분 58초 쯤이었나?
뚜벅 뚜벅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 방문 철문 앞에 딱 서고, 열쇠여는 소리가 났다. 당연히 방 안에 있는 9명은 모두 다 깼고 뭔일인가 존나게 놀랐다 (그시간만이 아니라 걍 평소에도 철문 따고 들어오는 일은 일년에 한번 정도 불시로 CRPT들이 소지품 검사할때 말곤 없다).
"XXX번 나와." 해서 다들 "뭔일이야 너 뭐했냐?"...
"잘들 지내고 계세요. 저 출소합니다." 하며 씩 웃으며 나갔다. 그때 두어명이 존나 뒤에서 뭐 쌍욕을 지껄였는데.. 어처피 안볼세기가 뭐 하고 나왔다(특히 빵잽이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안.. 정말 시기질투 남에 대한 관심 혐오 이런거 엄청나다. "꽃혔다" 라는 말도 내가알기로 그 안에서 나온 용어다).
뭐 사실 이건 별 썰도 아니긴 하지만 ㅋㅋㅋ 내딴엔 너무 인상깊었다 뭔가 이 좃같은세기들이랑 더이상 안지내도 된다는 그런 통쾌함? 즐거움? 1분 1초의 짜릿함? 전율..
아무튼 출소를 하고난 뒤, 당연히 당장 아무 것도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빨간 딱지는 말만 빨간 딱지긴 하지만... 실제로 삶에 영향을 아무 것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 관련된 일, 아이를 가르치는 일 등에 대해 '법적' 으로 출소 뒤 5년간 종사를 못하는데, 사실상 그냥 평생 못한다고 보면 된다. 내가 금융쪽 취업을 당시 노렸을때에도 당시 대기업들은 개개인의 '범죄경력조회서' 를 떼오는 것을 '강요' 했다. 회사 입장에서 이세기가 사기꾼인지, 횡령을 할 지도 모르는 세기이기 때문이다(보증보험 든다고 해도 당시엔 사전에 이런걸 철저히 봤다. 특히 삼성도 그랬다). 근데 현시점, 범죄경력조회서를 떼오게 하는 것은 위법이다. 개인의 범죄경력조회서는 개인만 봐야 한다. 거의 1급 개인정보랄까? 여튼 제3자가 그걸 보는 것, 떼오게 시키는 것 자체가 하면 안되는 일로 변화되었다. 그래서 사실상 금융권도 취업할 상황이 안되었고, 서브로 계획했던 인터넷 일타강사라던지 교수라던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당장은 노가다를 뛰었다. 하루도 거름없이 한 2달 60일 풀로 나갔다. 날씨도 비오는 애꿎은 날 하루 없어서 일이 없는 날이 없었다. 요새야 뭐 일 없어서 데마맞는 일이 종 있지만, 당시 내 고향은 그냥 일이 풍년이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내겐 없어서는 안되는 컴퓨터를 샀고(나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원조를 받은 것이 손에 꼽는다),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핸드폰도 자급제로 하나 사고.. 일단 다시 원래 생활 환경은 갖추기 시작했다.
근데 도저히 이 일로는 당장의 하루하루는 먹고산다 치더라도.. 지금 내 나이가 청춘인데, 뭔가 새로운 일을 도전해볼 만 한 밑천마련도 할 수가 없고, 미래도 없고, 맨날 같은 하루하루만 살아갈 것 같고.. 노가다도 한달 이상 다니면 그게 지치다기보다 습관이 되서 걍 이거 안하고 다른거 하기 싫어질 정도의 '역치'가 형성된다. 즉 노가다 중독되면 그 일 말고는 다른게 하기 싫어지는거다. 왜? 노가다는 내가 제끼고 싶은날 걍 제껴도 되고.. 맘 편하게 일하며 담배 피고(그땐 규제가 지금처럼 없었다) 음료수 주지 참(간식) 주지 낮잠 한시간 꼬박 꼬박 조지지.. 3시 30-4시면 칼퇴근하지 맨날 현금 따박따박주지..
근데 최소한 나는 당시 대가리가 있었기에 이렇게 익숙해지면 안된다는걸 자각했다.
수감생활에 대해 내가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안에서도 뉴욕 타임즈를 구독해서 남들이 자는 시간에도 신문 한 편 영문을 다 읽고 모르는 단어는 영문사전을 찾아가며 영문과 사회, 세상동향을 파악해 왔다.
(참고: 교도소 안에선 신문구독이 가능하다. 보통 조중동을 시키고 솔직히 뉴욕타임즈 구독 가능한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거다. 외국인 재소자들을 위해 도입된 것으로 완전 흔하지 않지만 구독 가능하다. 제일 비싼걸로 기억.
+부가적 참고: 교도소는 소등을 하지 않는다. 잘 시간 되도 불을 안끈다는 소리다. 그래서 안에선 모두 안대를 끼고 잠을 자야 한다. 왜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어만이 아니라.. 솔직히 남들 거들떠보지도 않는 교도소 안에서 정기적으로 틀어주는 방송이 몇 개 있다. 일단 (1) 하인리히법 중심으로 심폐소생술 방송 (2) 법무부송..(법은~ 어렵지 않아요~) (3) 저녁에 드라마 녹화본 (4) 뉴스 (5) 인간극장 등... 몇 개 있는데.. 그중 잠자기 전에 꼭 틀어주는 방송이 있다. 중국어랑 일본어 수업이다. 존나 프로페셔널한 강사는 아니지만 고급 강좌까지 모두 커리큘럼이 탄탄하게 짜져있는 강좌다. 기껏 15분 남짓이지만 아무도 그걸 보지 않는다.
나는 당시 1강부터 끝까지 독파해서 병음을 주위 중국어 잘 하는 수형자에게 발음법을 익히고.. 수많은 간체들을 학습하며 중국어 학습도 했다 (결국 출소한 뒤로 hsk 4급까진 땄다).
일단 그리고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ㄹㅇ 아주 어려운 일이다. 아버지들 아저씨들이 신문 읽는건 신문 읽는게 아니다.
그건 스키밍 하는거다. 진짜 신문을 읽어 본 사람 있을까? 일간지 신문 한 편에 있는 모든 글자를 이해하고 정독하면 최소 2-3시간 이상이 걸린다. 독해력이 좀 늦는 사람은 정말 과장 안하고 6-8시간도 걸린다. 신문 안에는 그만큼 다양한 정보들이 있고 다양한 논리들이 도처에 있다. 솔직히 나는 신문만 제대로 읽을 줄 안다 하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독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수와 관련된 개념, 형이상학적인 내용, 공상과학 등 신문 내에서 다루지 않는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부분은 배제한다면).
아무튼 결론은 안에서 존나 대가리를 탄탄히 하고 나왔기에 출소 뒤에도 나의 대학시절 유망했던 대가리를 굳게 만들지 않았다.
나의 이러한 역량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내가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솔직히 슬나에 나의 직업을 까발리긴 싫다. 그래도 좀 썰의 이해를 위해 설명을 하자면
내가 하는 일은.. 논문 컨설팅이다.
논문은 실로 많은 종류가 있다. 학위논문(학사, 석사, 박사), 학술논문(국내 학술지는 kci 등재 및 후보지 등, 해외 학술지는 scopus, sci, ssci 등 다양한 인용색인에 따른 유형이 있다), 연구보고서(석사의 경우 학위논문을 대체하는 연구보고서로 졸업이 가능한데 엄연히 학위논문과 다른 작성체제를 지닌다)...
또 그 논문 안에서도 연구방법에 따라 크게 양적연구와 질적연구, 또 세분화하면 양적연구 안에서도 실험연구와 조사연구가 있고 질적연구는 체계적 문헌고찰, 메타분석 등 수많은 유형들이 있다.
내가 지금도 대체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는 의문이긴 하나... 모르겠다. 그냥 머리 쓰면서 돈 벌 수 있는 일이,
그것도 목돈을 한번에 크게 땡길 수 있으며, 명확히 합법은 아니고 음영의 지대에서 나의 역량을 최대한 살림과 동시에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그냥 판단해버린 시점부터
좃도 뭔 말인지도 모르겠는 다수의 저자들이 쓴 연구방법론, 논문작성과 관련한 모든 서적, 그리고 수많은 전공분야의 저서(경영학, 예체능, 믿거나 말거나 북한학과 청소년학까지 답습했다)들을 읽고
특히 논문 컨설팅의 주요 소비자층들이 양적 조사연구에서 애로사항을 겪고 그 파트가 블루오션이라는 것을 파악,
SPSS와 R, SMART-PLS 등 평소 시벌 보도 못한 통계프로그램 내 분석방법들을 익히고 학습했다.
(다행이 나는 대학시절부터 통계학은 교수급으로 통달하고 있었기에 f검정부터 t검정, 회귀, 넓게는 시계열 분석까지 통달한 상황이어서 이 부분은 나의 역량을 살리기 충분했다)
그러고 나는 조그마한 사이트 하나를 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당연히 시발 지식인 같은데서부터 홍보를 했다. 이건 서칭하면 나올 수 있으니까 좀 MSG 친다.
"최고의 대필은 아만다에게 맡겨 주세요! ~~~~~~를 접속하시거나 카톡 ~~~~ 친구추가 주시고 견적부터 받아보세요"
누가 연락 오겠냐.. ㅅㅂ ㅋㅋㅋ 그런거 지식인 댓글 최소 10명 이상 달려있고 그마저도 운영정책 위반으로 서로가 서로 이간질해서 자른다.. 사이트 방문자는 기껏 시발 내가 반복해서 누른것만 올라가고..
그래서 나는 다른 전략을 취했다.
바로 논문으로 들어가지말고 좀 인지와 평판을 쌓을 수 있는 조그마한 것 부터 시작해보자고.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제일 만만해보이는게 방송통신대, 학은제 등 다니는 아재 아줌마들.. 중간기말고사마다 레포트 7-8개씩 내야 한다. (사회복지사 과정 듣는 사람이 제일 많다).
보통 그런거 '크몽(재능마켓)' 같은 곳에 많이들 의뢰하는데, 크몽은 전문가 수수료 명목으로 개세기들이 40%를 떼간다. 10만원 작업비를 받으면 나한테 6만원, 그 세기들이 4만원 가져간다. 그래도 크몽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마치 양재 꽃시장에 수많은 꽃 판매원들이 모여있는것처럼, 그곳은 규모의 경제를 펼치고 '플랫폼'의 역할을 내세워 장사를 잘 해 간다.
왜 쓸데없는 얘기로 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튼
네이버 카페 같은 곳에, 방통대 준비 아재 모임, 학은제 준비 아재 모임 같은 커뮤니티에 존나 대담한 시도를 한다.
무료 봉사로부터 시작했다.
레포트 작성에 어려움 겪는 분들, 제 도움 받아보시라고.
솔직히 그사람들 작성하는거 별 관심 없다 여기저기 긁어오고 카피킬러 돌려서 20% 미만 나오면 만족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사람들에게 필요한건 레포트 내용의 질이 아니라 걍 통과, 졸업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시도 속에서 나의 가치와 나의 역량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그런 커뮤활동 하는 아재, 아줌마들이 또 블로그 운영은 기똥차게 한다. 그 사람들의 간접홍보로 인해서 나의 컨설팅 또한 점점 간접홍보가 되기 시작했고,
간략하게 요약 하자면 약 2-3년 만에 존나게 몸집이 커졌다.
솔직히..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자만 하는 스타일 아니다. INTP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나는 대한민국 내에서 원탑이라 자부한다. 원탑 아니더라도 열손가락 안엔 들거다.
그래서 솔직히.. 월에 직장인 열 명 월급 이상은 번다. 그렇게 벌며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왔고, 게중엔 연애인도 있었고 현직 정치인도 있고 경찰관도 있다. 교수? 당연히 교수 손님이 학생 다음으로 제일 많다.
아무튼 그렇게 다시 나의 인생 제3막이 펼쳐진다.
수많은 유입된 손님 중
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가 내 애인이 되며.
-4부작은 내일 마지막 연재 합니다-
(사실 맨 마지막이 제일 별거 없을 수도 있지만 제일 제목 내용을 담은 구성이 될 것 같네요)